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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 히데오 결혼 연봉 투구폼 기록

영상이와 2019. 4. 3. 10:50

노모의 주무기는 토네이도 투구폼과 함께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낙차 큰 포크볼입니다. 타자에게 등을 보일 정도로 몸을 비트는 투구폼으로, 많은 타자들에게 치기 어려운 투수로 여겨졌답니다.

덕택에 미국에서 "토네이도"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1995년 선보였던 노모의 포크볼을 90년대를 대표하는 결정구로 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다이나믹한 투구폼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선 부상도 잦았으며 부상 때문에 기록에 손해를 많이 봤습니다.

사실상 일본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는 길을 열어준 선수로서, 스즈키 이치로나 마쓰자카 다이스케같은 일본인 메이저리거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저 선수들 또한 모두 노모를 존경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모의 메이저 진출은 메이저에 대한 동경도 있었지만, 사실 더 이상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할 의지가 본인에게 없었던 점도 큽니다. 원래 노모를 지명할 당시의 긴테쓰 버팔로즈의 감독은 스즈키 이치로를 길러낸 것으로도 유명한 일본의 대표적인 덕장인 오기 아키라로 노모의 특유의 토네이도 투구폼이나 조정법 등에 대해 전혀 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기 감독의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스타일에서 나온 것으로 노모는 그런 오기 감독을 매우 신뢰하며 따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기 감독이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긴테쓰 버팔로즈의 전설이자 현재까지 일본에서 마지막 300승 투수로 남아있는 스즈키 케이시가 감독으로 들어온 뒤 상황이 달라집니다

상기한대로 대투수인 스즈키 케이시는 본인의 투수로서의 철학을 노모에게 강요하여 투구폼 수정 등을 요구하였고 이를 통해 노모는 감독과의 불화로 점차 의욕을 잃게 됩니다. 결국 노모는 부상을 처음으로 200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1994시즌을 뒤로 하고 팀과의 교섭도 결렬, 자유계약신분이 아닌 임의탈퇴 신분상태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도전하게 됩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메이저리그는 일본프로야구 조차도 그야말로 넘볼 수 없는 벽이나 다름 없었는데, 때문에 노모의 진출에 대해 일본의 매스컴들의 반응도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노모와의 불화로 원인을 제공한 스즈키 케이시 감독은 노모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인생 최대의 마스터베이션이라는 혹평을 내릴 정도였답니다. 하지만 정작 스즈키 케이시는 긴테쓰를 재임기간 동안 최약체 팀으로 꼬라박으면서 1995년 해임된 후 다시는 감독직을 맡지 못하고 있답니다.